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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해설

[창작노트] 첫 사랑 그러나

by 꿈꾸는몽당연필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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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가난하게 살았다. 은지를 좋아했다. 은지의 아버지는 대기업의 과장이었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가용을 몰았다. 기사까지 딸린. 은지도 민수를 좋아했다. 하지만 알았다. 서로는 절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갓 스물이 되었을 때 민수는 은지의 손을 잡고 은지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은지를 내게 달라고. 그날 민수는 은수의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모욕을 당했고, 은지는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민수는 열심히 살았다. 대학을 갈 형편이 되지 않고 어느 작은 공장에 들어가 일을 했다. 은지는 아버지의 후원 아래 서울의 명문 여대를 들어갔고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리고 서로는 잊혔다.

 

민수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다. 사장은 착하고 열심히 일하던 민수를 불러 이 회사를 인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직원 고작 5명이라 인수금은 크지 않았지만 빚이 2억이 넘었다. 사장은 도저히 그 빚을 감당할 수도 없었고, 나이가 들어 무리해서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민수는 지금까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든 8천만 원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2억을 만들고 회사를 인수했다.

 

힘들었다. 하지만 성실은 배신하지 않았다. 서서히 빚도 갚고 일도 잘한다는 소문이 났다. 10년 만에 회사는 매해 순이익만 100억이 넘는 중견 기업이 되었다.

 

은지는 대학 졸업 후 유명 기업의 아들과 결혼을 했지만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사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어머니의 치료비를 위해 얼마의 돈을 썼다. 하지만 남편이 그것을 알고 불같이 화를 냈다. 결국 온갖 무시를 받고 이혼을 당하게 된다.

 

혼자된 은지는 일을 찾았지만 이혼녀라는 딱지가 붙어 일자리가 없었다. 죽음을 결심하고 잠수교를 찾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울고 또 울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결국 어머니까지 숨을 거두었다. 이제 고아가 되었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사치스러웠다. 하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야쿠르트 아줌마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얼굴을 가리면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굳이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으면 서울 안에서 만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누가 욕하든 무슨 상관일까? 오기도 생겼다.

 

대리점장은 은지에게 지역을 할당하고 지금까지 우유를 넣은 집을 가르쳐 주었다. 영업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일이 벌써 석 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도 제법 손에 붙었다. 늦봄에 시작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 되었다.

 

점장이 아침 조회를 마치고 주소를 주면서 오늘부터 이곳에 매일 야쿠르트 하나와 우유 하나씩 넣으라고 했다. 성북동 샤를 아파트 507호였다. 문 앞에 야쿠르트 봉지를 설치하고 넣고 오면 끝이다. 하지만 첫날은 고객과 직접 만나 간단한 설명을 해야 했기에 초인종을 눌렀다.

조용했다.

한 번 더 눌렀다. 

"잠깐만요"

어떤 30대 초반의 남자가 나왔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바구니를 설치하고 간략하게 어떻게 배급하는 지를 설명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계속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옷에 명찰 달려 있어서 가끔 고객들이 이름을 불었다.

 

"최은지!"

"네? 저요?"

"네.... 너.. 은지 아니니? 나 민수야. 김민수"

"민수????"

 

은지는 깜짝 놀랐다. 순간 12년 전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은지야 나야 민수"

 

도망쳐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리 참으려고 참을 수가 없었다.

"잠깐 들어가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아냐 괜찮아. 나 갈게"

"안 돼! 가지 마."

"아냐 갈 거야"

"안 돼. 가지만"

 

한 참 실랑이를 한 다음 은지는 민수의 집으로 들어갔다. 10년이 넘도록 민수를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결혼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궁금했다.

 

샤를 아파트는 성북동에서 최고의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였다. 민수가 여기에 살고 있다. 집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혼자다.

 

속으로 생각한다.

"아직 결혼 안 했나?"

 

묻지 않았다. 민수가 먼저 말했다.

"나 아직 혼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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